1990년도까지 우리 집은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물론 시골 재래식과는 달리 도자기 변기가 있는 재래식이었지만 아무튼지 간에 재래식이었다. 한옥집을 다세대 주택으로 건축하면서 수세식 화장실을 처음 사용했는데 어린 시절 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창피해서 집에 친구들을 초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동생 친구들 중 짖궂은 아이들은 남동생을 놀리기까지 했었다. 이런 개인사적인 이유에서 화장실을 특별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보편적으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인 화장실이 한 집안의 청결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거나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측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화장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최근의 일이지 그리 오래된 문화는 아니다. 이런한 화장실에 대한 인식의 전환, 화장실 문화의 새로운 시작이 대한민국 수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을까? 아마 해우제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나도 '에이 그건 과장이야.' 라며, 화장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청결히 하는 건 그냥 문명 발달에 따른 문화의 흐름이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TV에서 스치듯 지나가면서 화장실을 집안 한가운데 배치하고 전혀 다른 개념으로 구현해낸 집을 소개한 걸 보았는데 그게 수원에 있는 해우재란 곳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수원에 살게 되었으니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 미루다 세계 화장실 포럼이 이번 주에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이와 함께 나들이 삼아 방문했다. 직접 가 보니 해우재는 화장실 문화 전시관의 이름이다. 해우재 건축에 관련한 자료들과 세계 화장실 협회에서 하는 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세기의 변기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가 아직 어려 세기의 변기 전만 잠깐 구경할 뿐 1층에 있는 다양한 자료들을 함께 읽어 보진 못 했는데 사랑의 화장실 짓기 운동에 대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해우재 전시관 모습
90년대 후반 수원에서부터 시작되어 인류 문화 개선 운동 차원에서 화장실 관련 단체들이 형성되고 2007년도에는 세계 화장실 협회가 창설되어 저개발 국가에 화장실 보급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식량 공급, 의복 공급 등 여러 가지 의식주를 해결해 주기 위한 일들을 하는 많은 민간 단체, 국제 기구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화장실을 지어 주는 단체가 있고,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화장실이라는 영역에서 뜻깊고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시작이 우리 나라고 수원이라니 놀라웠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에는 의식주도 있지만 배설도 있다. 우리가 화장실을 중시하는 건 이 기초적 욕구인 배설의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고 이 욕구의 해결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그런데 세계보건 기구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40%가 화장실이 없이 생활하고 있고 이는 저개발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연간 200만명이 수인성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기본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 이것을 도와주는 것이 인권이라고 볼 때 화장실 문화 운동은 인권 운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인권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해우재에 갈 때는 아직 배변 훈련을 하지 못한 아이에게 변기를 친숙하게 해 주고 배변 훈련에 도움을 받을까 싶은 마음으로 갔다. 그런데 사랑의 화장실 짓기 운동을 보고 감명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아이의 배변 훈련은 머릿 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해우재문화 센터 체험모습
해우재문화 센터 체험 모습
다녀와서 돌아보니 해우재 밖 공원에 있는 다른 나라와 우리 나라 옛날의 다양한 변기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게 재미있는 체험 거리가 많은 해우제 문화센터에서 아이는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변기와 친해지고 똥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집에 와서 계속해서 체험관에서 했던 공이 올라가서 우리 몸의 위장과 소대장을 지나 똥으로 나오는 걸 얘기하는 걸 보니 말이다. 아이를 위해 찾은 해우제에서 나의 일상 생활 속에 숨어 있는 내가 알지 못 했던 인권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되고 발상의 전환이 갖는 위대함에 놀라는 체험을 하였다.
이 체험을 이어나가기 위해 사랑의 화장실짓기 운동에 참여하는 저금통에 열심히 저금을 할 생각이다. 이 운동의 홀씨가 널리퍼져 수원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세계 인류 인권 운동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