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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사랑]그로부터 수원천이 살아났다, 수원이 깨어났다!
admin | 2016-06-08

그로부터 수원천이 살아났다, 수원이 깨어났다!

김우영/e수원뉴스 주간, 시인

 

‘수원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비록 지금은 미꾸라지 한 마리 살 수 없는 죽음의 하천으로 변했지만 수원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소중한 옛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먼저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도 봄 여름 가을이면 항상 아낙네들의 빨래 방망이 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중략)...어머니를 따라 온 꼬마들은 알몸으로 어울려 물장구를 치거나 고무신으로 송사리를 잡는다고 몰려다니던 정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글은 1989년 1월호 월간 ‘수원사랑’에 실린 나의 글이다. 지금으로부터 27년 6개월 전의 일이고 어느덧 나는 우리나이로 60줄에 접어들었다. 그때는 세상 두려운 줄 몰랐던 30대 초반의 나이였고 갓 50세가 된 심재덕 당시 수원문화원장의 추진력과 뚝심, 그리고 신선한 발상에 감동을 받곤 했다.

 


 


수원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그 이름 ‘심재덕’

그는 나중에 수원시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에 추대되는 등 수원은 물론 우리나라의 큰 인물이 됐다.

그의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 중 수원사람과 수원의 역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공로 몇 가지만 들자. 먼저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일이다. 정부에서도 안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직접 단신으로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유네스코 위원들과 담판을 지었다. 그리고 1997년 6월 28일 수원시민들은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났다는 낭보를 들었다. 심재덕 당시 수원시장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일제에 의해 훼손됐던 화성행궁을 복원시킨 것, 철조망 안에 갇혀서 악취를 풍기며 죽어가던 서호를 개방시키고 살아나게 한 일, 그리고 각종 해충과 악취로 인해 생태복원이 불가능하므로 차라리 복개해 도로로 사용하자던 정치권과 인근 주민들의 여론이 드높던 때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수원천 살리기운동’을 시작했던 일...

심재덕이 펼쳤던 이런 사업들은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런 일들의 중심에는 나도 있었다. 화성행궁 복원 사업에는 추진위원회 홍보부장으로, 서호 개방운동에는 칼럼이나 기사로 앞장섰다.

 


수원천 복개반대 운동은 ‘수원사랑’지로부터 비롯

 

수원천 살리기 운동에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적인 수원천 살리기운동(수원천 복개 반대 운동)의 첫 번째 신호탄은 수원문화원이 발행한 월간 ‘수원사랑’이 쏘아 올렸다. ‘수원천, 수원의 젖줄을 살리자’란 3차례 기획시리즈를 시작한 것인데 필자가 첫 번째와 세 번째 기획기사를, 그리고 칼럼을 쓰는 등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그 바람에 수원천 복개를 찬성하던 일부 시의원과 수원천 주변 일부 상인들에게 미움을 사기도 했다.

수원사랑이란 잡지는 1987년 9월 수원문화원장으로 취임한 심재덕 씨가 필자 등 수원지역의 문화예술인과 언론인 등 각 방면의 편집위원을 구성해 발행한 포켓용 작은 잡지다. 당시 수원에 문화예술인과 행사가 많았음에도 이를 홍보할 마땅한 매체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자비를 들여 펴냈고 이 취지에 적극 공감한 편집위원들도 무료로 원고를 쓰고 편집을 도와 결간 없이 발행됐다.

이 지면을 통해 수원천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자 많은 시민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고 지역 언론들과 중앙 언론들의 집중취재 대상이 됐다.

 

‘거듭 거듭 도시행정 당국자나 이권에 개입된 몇몇 시민들, 그리고 수원천 복개를 들먹이며 유권자를 현혹시키는 몇몇 정치인들에게 당부한다. 수원천을 콘크리트로 덮고 그 위에 도로와 주차장과 상가를 만든다고 한들 긴 안목으로 볼 때 수원시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중략)...오히려 교통의 집중화 현상을 일으켜 혼잡만 부채질 할 것이다...(중략)...제발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하지 말자’(1990.3월 수원사랑)

 


“복개는 소탐(小貪)”호소..그리고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수원천

 

수원문화원과 양식있는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 한때 수원시에 의해 복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가 나올 때 나는 수원사랑에 이 칼럼을 싣고 시민들에게 수원천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수원천 살리기 뿐 만 아니라 오래 전 수해로 떠내려 간 남수문도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인일보도 3월14일자 사설을 통해 ‘복개문제는 좀 더 폭넓게 그리고 먼 장래까지 내다보며 풀어야 한다. 특히 수원천이 인근 주민들만의 것이 아니고 전 수원시민의 것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수원시는 복개를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하길 바란다’라고 복개 반대 시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논란 속에서 해가 갔다. 1989년부터 시작된 수원문화원의 외로운 싸움은 이 운동을 선두에서 이끌어온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이 1995년 6월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초대 민선 수원시장에 당선되고 7월부터 시장으로서의 업무에 돌입하면서 사실상 끝났다. 심시장 취임 후인 1995년 12월 시민단체가 모여 수원천되살리기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대대적인 복개 반대 운동을 벌인 결과 수원시는 문화재를 지키고 수원천을 살리기 위해 복개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진행 중이었던 복개공사는 중지됐다.

그리고 수원천이 살아났다. 1997년엔 물고기들이 돌아왔고 각종 야생화가 핀 하천에서는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수원천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1996년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반드시 수원천을 걷는다. 집에서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지만 일부러라도 자전거나 시내버스를 이용해 화성행궁이나 수원천에 간다. 왜냐 하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수원천 살리기와 화성행궁 복원사업에 동참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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