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주: 전 수원시장인 심재덕 선생과의 가상 대담은 ‘미스터 토일렛, 우리가슴속에 영원히 살다’와 ‘미스터 토일렛, 당신과 함께 라서 행복합니다’라는 책자 두 권의 내용을 근거로 재구성한 것이며 행간에 숨어있는 심 선생의 생각과 의지도 재해석해 곁들였다.>
반딧불이 화장실
기자는 지난 15일, 광교산 입구에 있는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이목동에 있는 해우재까지 걸었다.
의미를 좀 부여하자면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우리의 것’에 대해 노력해 보자고 외쳤던 한 사람의 고뇌를 들어보고 싶어서다. 아하, 심재덕! 그렇다. 수원의 또 다른 아이콘인 호텔같은 공중화장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킨 심재덕 선생에 대한 얘기다.
왜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해우재까지인가에 대해서는 이 스토리의 시작점이며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광교산 입구에 자리한 반딧불이 화장실은 지난 99년에 첫 삽을 뜬 공중화장실 혁명의 시작점이며 해우재는 심 선생이 임종을 앞둔 시점, 화장실에 대해 집대성해 놓은 변기 모양의 건축물로 마지막 의지의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표면적으로는 화장실에 국한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공재, 공유공간에 대한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광교산 입구 반딧불이 화장실 앞에서 심재덕 선생을 만난 것은 오전 10시경, 노타이 차림의 심 선생은 대뜸 “둘러보면 알게 되는데 왜 만나자고 했냐”며 의아해했다. “물질은 눈으로 확인하면 되지만 정신은 마음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리며 오늘 해우재까지의 걷기에 동참을 요청 드렸다.
첫 발자국을 떼며 “다른 곳에 가면 공원 옆에 화장실이 덤으로 딸려있는데 이곳은 화장실 옆에 공원이 딸려있어요.” 라고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했다.
심 선생(이후 심 전 시장, 그는 시장으로 불리길 원했다)은 당시 반딧불이 화장실과 지지대고개 화장실을 만들어 놓고 공중화장실이 호화판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기껏 시장이 화장실이나 손대고 다니느냐는 소릴 듣기도 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그런 얘기까지 들어가면서 왜 하필 화장실이었느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심 전 시장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데 불결한 공중화장실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고 시민들의 위생과 복지 차원에서도 필요했기에 서둘러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런 일은 중앙정부에서 할 일로 생각하고 미루거나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요...“라는 질문에 대해 심 전 시장은 한 호흡을 쉬고 ”시대가 점점 개인의 일도 행정의 일이라고 빗자루를 들지 않는 경향이 많지요. 지자체와 정부의 관계도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다소 원론적인 얘기를 하면서 세태를 꼬집었다.
그런 면에서 수원의 근대적 인물로 꼽고 있는 고 이병희 씨와 심 전 시장은 확연히 다른 철학과 행보로 보인다고 생각을 할 즈음 “외부에서 뭔가를 끌어와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내부에서 행동을 일으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지요.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저는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해 경기도청과 삼성전자를 수원에 유치한 그와 화장실문화운동 등 인본주의 환경운동을 벌였던 본인은 다른 행보였음을 분명히 했다.
시대가 요구했지만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또, 형식적인 일처리로 일관하지 않고 환경에 대한 철학과 소신으로 밀어붙여 뚜렷한 획을 그어놓은 수원의 공중화장실 문화 운동의 시작점 반딧불이 화장실. 고개는 자꾸 그곳을 향하고 입으로는 뭔가 말하고픈 것이 있는 듯 했지만 발은 어느새 수원천을 건너고 있었다.
수원천
심 전시장은 화제를 바꾸려는 듯 “수원천이 많이 맑아졌죠?”라며 또 하나의 공유공간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화장실 얘기가 자연스럽게 하천 얘기로 이어졌다. 심 전 시장은 ‘행로는 좀 벗어나지만 수원천을 따라 화홍문까지 걷자’고 제안했다. 수원천 복개 반대운동과 수원천 되살리기 운동을 회고하는 듯 했다.
수원천 복개 건은 지난 94년 도심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시민들에 의해 제기됐다가 하천 복개가 야기할 생태피해 등의 심각성을 부각시킨 시민단체등에 의해 2년 만에 폐기된 것인데 당시 결정권자였던 심 시장은 “물고기가 뛰어놀 수 있는 하천으로 복원해 후손들에게 떳떳하게 물려주겠다”며 수원천 복개 전면중단이라는 결단을 내렸었다.
심 전 시장은 수원천을 따라 화홍문까지 가는 길에서 빗물에 불어났지만 징검다리도 건너봤다가 풀냄새도 맡아보고 물고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공공재, 공유공간을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거나 점유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라고 강조하면서 복개의 허와 실에 대해서 설명했다.
우리는 화홍문을 지나 1시간 30여분이 지나자 어느덧 만석공원과 노송지대를 걷고 있었다. “서 선생, 소나무가 이식하기 힘든 나무라는 것을 아세요? 그런데 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옮겨 심은 것입니다. ‘효행소나무심기 헌수운동’을 전개해 400여 그루를 심었고 지지대공원까지 확산했습니다. 모두들 얼마 못가서 죽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잘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환경을 위한 가로수 관리 수원 시민운동과 나무심기 운동을 말하는 듯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심 전 시장은 수원화성의 유네스코 등재와 월드컵 수원유치 뿐만이 아닌 환경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다양한 것들을 추진한 듯했다. 공중화장실 개선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쓰레기 소각장과 연화장 건립 등을 볼 때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거시적 관점의 미래 환경에 대해 특별한 철학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뒤엉킬 즈음, 우리는 출발 2시간 만에 변기 모양의 커다란 집, 해우재에 도착했다. “참 재미난 건물입니다”라고 말문을 떼자 심 전 시장은 “겉 모양만 보고 웃을지 모르지만 저 건물은 그저 상징적인 겁니다. 이 사회의 상층부(음식)가 아닌 하층부(똥)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시각을 맞춰야 한다는 뜻을 둔 ‘밑으로 부터의 개혁적 건물’이라 할 수 있지요”
다소 아리송하지만 미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관심 갖고 욕심내는 음식에 대한 것이 아닌 세상에 존재하지만 모두 외면하는 똥(변)에 대한 이야기를 표면화 시킨, 어찌 보면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외치는 상징물이라 느껴졌다.
심재덕 전 수원시장 캐리커쳐
고르지 않은 일기에 비와 함께 걸었던 2시간여 동안의 피곤은 해우재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스르르 몰려왔다, 심 전 시장은 걸었더니 많이 피곤하다면서 2층에 가서 잠시 쉬고 나온다는 말을 끝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얘기는 미스터토일렛 심재덕 기념사업회 이원형 사무국장이 이어받았다.
“천천히 둘러보고 가라”던 말, “자세히 둘러보면 화장실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공공재, 공유공간에 대한 얘기”라던 말, “미래엔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라는 공동의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행복한 사회는 요원”하다는 말. 해우재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해우재의 구조는 독특했다. 집의 정 중앙에 위치한 화장실은 미래엔 무엇이 소중한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중심이다’ 라는 묵시적 메시지. 그리고 해우재는 말했다. ‘위대한 시민은 위대한 역사를 만든다’고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고 심재덕 선생과 2시간여의 데이트, 아름다운 사람이 남긴 위대한 역사를 체험한 듯 했다.
해우재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공공재, 공유공간의 혜택은 많이 받으면서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얼마나 많이 느끼면서 살아갈까? 내 것만 챙기는 세상에서 우리의 것인 공공재, 공유공간을 보듬어 안는 이들에게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감사하면서 살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